
푸어오버 추출과 투과식 핸드드립은 같은 원두와 같은 분쇄도를 사용해도 결과가 꽤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핸드드립 레시피의 추출 횟수, 물을 붓는 시간, 물줄기의 굵기와 낙차를 바꾸면 농도뿐 아니라 산미와 단맛, 바디, 후미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까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두와 드리퍼, 필터를 최대한 동일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물을 붓는 방식만 바꿔봤습니다.
하나는 비교적 빠르고 활발한 푸어오버 방식, 다른 하나는 같은 푸어오버 레시피 안에서도 물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차이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맛은 제가 사용하는 그라인더와 드리퍼, 필터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추출했을 때의 경험입니다. 같은 레시피라도 그라인더와 물줄기, 원두 상태가 달라지면 결과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푸어오버 추출에서 먼저 고정한 조건

핸드드립 비교에서 여러 조건을 한꺼번에 바꾸면 무엇 때문에 맛이 달라졌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능한 한 조건을 고정했습니다.
사용한 원두는 16g입니다.
그라인딩 과정에서 남는 잔량을 고려해 실제 계량할 때는 0.3~0.4g 정도를 더 넣기도 합니다. 다만 원두나 그라인더 상태에 따라 잔량은 항상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비교에서는 큰 변수로 보지 않았습니다.
분쇄도는 처음에는 약 700마이크론을 기준으로 맞췄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볼드 텅스텐 필터버 기준이기 때문에 숫자 자체를 다른 그라인더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같은 700마이크론 수준이라도 그라인더마다 입자 분포와 미분 발생량이 상당히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그라인더에서 물 빠짐과 맛을 확인하면서 조정하는 것입니다.
사용한 드리퍼와 필터
이번에도 고노 드리퍼와 MD-26C 필터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필터는 비교적 두께감이 있고 물 빠짐이 빠른 편이라고 느껴지는 필터와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이런 드리퍼와 필터 조합에서는 물줄기를 너무 빠르게 가져가면 위쪽에 물이 차오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이 차오른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드리퍼 자체의 배수 특성과 분쇄도, 미분량을 함께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실험에서도 단순히 전체 추출 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을 붓는 동안 커피 배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이 어느 정도까지 차오르는지를 함께 확인했습니다.
커피 배드는 너무 많이 흔들지 않았습니다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평탄화를 할 때도 의외로 차이가 생깁니다.
수평을 맞추겠다고 드리퍼를 여러 번 강하게 흔들면 작은 입자가 큰 입자 사이로 내려가면서 커피층이 더 촘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상보다 물 빠짐이 느려질 수 있습니다.
저는 평탄화를 할 때 크게 흔들지 않고 드리퍼를 가볍게 몇 번 움직여 수평만 맞췄습니다.
표현하자면 '샤샥' 정도입니다.
이 단계부터 추출 조건을 최대한 일정하게 맞춰야 이후 물줄기 차이를 비교하기가 쉬워집니다.
첫 번째 푸어오버 레시피, 40-60-60으로 추출
첫 번째 레시피는 40-60-60, 총 160g을 붓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제가 표현하는 4-6-6 레시피입니다.
40g으로 뜸을 들인 뒤 60g, 다시 60g을 나눠 붓는 방식입니다.
4-8-4를 조금 더 나눠 추출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STEP 1. 뜸들이기 40g
먼저 40g을 약 20초 동안 부었습니다.
이번에는 일반적으로 제가 사용하는 느린 투과식 핸드드립보다는 물줄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차이는 뜸들이기 단계부터 바로 나타났습니다.
30초가 되기 전부터 생각보다 많은 커피가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물을 빠르게 공급하니 아래로 내려가는 속도도 빨라졌지만 커피층 전체로 물이 확산되는 속도 역시 빨라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뜸들이기를 단순히 '몇 g 붓는다'는 숫자로만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같은 40g이라도 10초에 붓는 것과 20초에 붓는 것, 아주 가는 물줄기로 30초 가까이 붓는 것은 커피층이 받는 자극이 다릅니다.
제가 실제로 해보니 그 차이가 이후 추출 속도와 맛에서도 느껴졌습니다.
40-60-60 추출에서 물줄기는 어떻게 조절했나
뜸들이기가 끝난 뒤 60g을 추가하고 다시 60g을 부었습니다.
제가 평소 사용하는 투과식 핸드드립보다는 빠르고 활발했지만 일반적인 푸어오버처럼 커피층을 강하게 뒤집는 방식까지는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특히 첫 번째 60g을 부을 때 중앙에서 시작해 작은 원을 그리며 물을 공급했습니다.
물을 붓는 속도와 아래로 빠지는 속도가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고노처럼 상대적으로 물이 천천히 빠지는 조건에서는 어느 정도 물이 차오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드리퍼의 물 빠짐 속도입니다.
배수가 빠른 드리퍼라면 같은 시간에 더 굵은 물줄기를 사용할 수 있고, 배수가 느리다면 조금 더 가늘게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줄기보다 더 신경 쓴 것은 낙차였습니다

핸드드립을 하다 보면 물을 세게 붓는 것과 높은 곳에서 붓는 것을 비슷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추출할 때는 물줄기의 굵기보다 낙차를 더 조심하는 편입니다.
주전자를 높이 들어 물을 떨어뜨리면 커피 배드가 크게 흔들립니다.
커피층이 지나치게 움직이면 미분이 아래쪽이나 필터 쪽으로 이동하면서 후반부 물 빠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푸어오버에서도 물의 공급 속도는 높이되 주전자와 커피층 사이의 거리는 가능한 한 가깝게 유지했습니다.
빠르게 붓되 거칠게 붓지 않는 방식입니다.
이 부분이 제가 생각하는 푸어오버와 투과식 핸드드립 사이의 중요한 조절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 추출은 약 2분 40초
약 2분 33초쯤 되었을 때 대부분의 물이 빠졌습니다.
조금 더 부어볼까 고민했지만 레시피 비교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멈췄습니다.
전체 추출 과정은 약 2분 40초였습니다.
40-60-60으로 총 160g을 부었고 서버에 실제로 내려온 커피는 약 120g 정도였습니다.
이후 약 100g의 물을 추가해 농도를 조절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사용하는 비율은 '실제로 서버에 내려온 커피 양'이 아니라 원두 대비 전체 사용 수량을 기준으로 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16g의 원두를 기준으로 추출수와 가수를 합쳐 약 1:16 전후가 되도록 조절했습니다.
제가 마셔본 경험에서는 중강배전은 추출 횟수와 농도에 따라 비교적 묽게 조절해도 밸런스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고, 약배전은 1:15~1:16 부근에서 시작해 맛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원두는 약중배전에 가깝다고 판단해 그 중간 정도에서 맞췄습니다.
이 비율 역시 정답이라기보다는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40-60-60 푸어오버의 맛은 어땠을까
첫 모금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깔끔함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빠르고 활발하게 물을 공급했기 때문인지 시작부터 무거운 느낌보다는 밝고 환한 인상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특히 산뜻한 향과 화사한 캐릭터가 비교적 선명했습니다.
제가 마시면서 느낀 표현으로는 좋은 부분을 앞쪽으로 끌어올려 골라 담은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반까지 이어지던 화사함이 후미에서도 계속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아주 약하게 거친 뉘앙스가 남았습니다.
강한 잡미라기보다는 깔끔하게 끝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마지막에 흔적처럼 조금 남는 느낌이었습니다.
원두가 로스팅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상태였고 로스팅 결과 자체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기 때문에 추출 방법 하나만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같은 원두를 이전에 투과식 핸드드립으로 마셨을 때와 비교하면 차이가 느껴졌기 때문에 물줄기와 추출 방식의 영향도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40-80-40은 어떻게 달라질까
한 번의 추출만으로 판단하면 원두 자체의 편차인지 레시피의 영향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40-80-40, 즉 4-8-4 방식도 이어서 진행했습니다.
전체 물의 양은 160g으로 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두 번째 푸어에서 공급하는 물의 양입니다.
첫 번째 방식이 40-60-60이었다면 이번에는 40g 뜸들이기 이후 80g을 한 번에 넣고 마지막 40g으로 마무리합니다.
40-80-40에서는 뜸들이기부터 조금 부드럽게
40g 뜸들이기는 이전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물줄기로 진행했습니다.
이후 80g을 넣고 마지막으로 40g을 부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전체 160g으로 동일합니다.
하지만 마셔보면 같은 맛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두 번째 푸어에서 60g을 붓는 것과 80g을 붓는 것은 생각보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번에 들어가는 물이 많아지면서 커피층이 받는 자극과 추출 진행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분쇄도 역시 기존보다 약 100마이크론 정도 굵게 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히 '푸어 횟수 하나만의 차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이 홈카페에서 자주 생기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변수를 두 가지 이상 동시에 바꾸면 무엇 때문에 맛이 달라졌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제가 직접 마셔본 결과에서는 향의 선명함은 살아났지만 이전 추출과 비교하면 바디와 단맛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분쇄도를 굵게 가져가면서 전체 추출 진행이 빨라진 것도 한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향은 또렷하지만 그 향을 받쳐주는 단맛과 질감이 조금 부족하니 맛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금방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40-60-60과 40-80-40, 실제로 느낀 차이
두 방식의 총 투입수는 같지만 결과는 같지 않았습니다.
제 추출 조건에서 40-60-60은 비교적 화사한 느낌과 깔끔한 첫맛이 인상적이었고, 추출을 여러 번 나누면서 맛의 흐름도 조금 더 차분하게 이어졌습니다.
반면 40-80-40은 두 번째 푸어의 물량이 많아지면서 향이 조금 더 빠르고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분쇄도까지 굵게 바꾼 영향이 겹치면서 단맛과 바디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두 레시피 가운데 어느 것이 무조건 좋다고 정하기보다는 원하는 맛에 맞춰 조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화사함과 선명한 향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물 공급 속도를 조금 높여볼 수 있고, 단맛과 부드러운 질감을 더 확보하고 싶다면 물줄기와 분쇄도, 전체 접촉 시간을 다시 조정해볼 수 있습니다.
내 핸드드립에도 이 레시피를 그대로 적용해도 될까?
그대로 적용해서 맛을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핸드드립에는 생각보다 변수가 많습니다.
그라인더가 달라지면 같은 분쇄도 숫자에서도 입자 분포가 달라지고, 필터가 달라지면 배수 속도가 달라집니다.
드리퍼의 리브 구조나 필터 밀착 정도도 물 빠짐에 영향을 줍니다.
주전자가 달라지면 물줄기를 만드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사람마다 물을 붓는 속도와 원을 그리는 크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레시피는 정답이라기보다는 비교를 위한 기준점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레시피가 40-60-60이라면 다음 추출에서는 원두와 분쇄도를 그대로 두고 40-80-40만 비교해 보는 식입니다.
그래야 내가 마신 맛의 변화가 어디서 왔는지 찾기가 쉬워집니다.
푸어오버 추출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4가지
제가 여러 번 추출하면서 특히 차이가 크다고 느낀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분쇄도입니다. 조금만 굵어져도 물 빠짐과 추출 속도가 달라지고, 향은 선명해지지만 단맛이나 바디가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는 한 번에 붓는 물의 양입니다. 60g을 붓는 것과 80g을 붓는 것은 단순히 20g 차이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커피층이 받는 자극과 수위가 달라집니다.
셋째는 물줄기의 속도와 굵기입니다. 같은 양의 물이라도 천천히 붓느냐 빠르게 붓느냐에 따라 커피층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마지막은 낙차입니다. 물줄기가 강하지 않더라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커피 배드가 예상보다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후반 물 빠짐이 갑자기 느려지는 경우라면 분쇄도만 조정하기 전에 물줄기와 낙차가 커피층을 과하게 흔들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볼 만합니다.
푸어오버와 투과식 핸드드립은 결국 원하는 맛의 차이

이번 비교에서 제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어느 방식이 더 좋은가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원두를 사용하면서 물을 붓는 방식만 바꿨을 때 내가 느끼는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가가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빠르고 활발한 푸어오버에서는 화사함과 향의 선명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대로 제가 평소 사용하는 부드러운 투과식 핸드드립은 조금 더 차분하게 맛을 쌓아가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같은 160g을 사용하더라도 40-60-60과 40-80-40의 차이가 느껴졌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두 번째 비교에서는 분쇄도까지 변경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분쇄도를 완전히 동일하게 고정한 상태에서 다시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홈카페에서 맛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레시피를 계속 바꾸는 것보다 원두와 분쇄도를 고정하고 한 번에 변수 하나씩 바꿔보는 방식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오늘 마신 커피가 유난히 가볍다면 물줄기와 분쇄도를 확인하고, 향은 좋은데 단맛이 부족하다면 추출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식입니다.
결국 좋은 핸드드립 레시피는 유명한 숫자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원두와 그라인더, 드리퍼에서 원하는 맛을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레시피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