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울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내려 마신 커피가 의외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다시 내려보면 그 맛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울을 앞에 놓고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떠올리면서 다시 재현해봤습니다.
아직 커피 필터를 찾지 못해서 이번에도 페이퍼타월을 사용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환경이지만 나머지 조건은 최대한 정상적으로 맞췄습니다.

콜롬비아 게이샤 17.3g으로 시작
사용한 원두는 콜롬비아 La Fortuna Palestine Geisha 약배전입니다.
개인적으로 워시드 방식의 커피가 주는 깔끔한 인상을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이번에는 원두 17.3g을 사용했습니다. 평소보다 약 1g 정도 더 많은 양입니다.
분쇄는 볼드 MK2 텅스텐 필터버를 사용했습니다. 분쇄 후에는 커피층을 여러 번 가볍게 정리해 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지 않도록 평탄화를 충분히 해줬습니다.
초반에는 부드럽게, 후반에는 굵게
이번 추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물줄기였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물을 붓지 않고 부드럽고 가는 물줄기로 시작했습니다.
한 번에 약 25~30g 정도씩 들어가도록 10회전 정도로 천천히 물을 공급했습니다.
초반에는 대략 25g씩 나눠가며 진행했고, 중간에는 조금씩 물의 양을 늘려 약 105g까지 추출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물줄기를 조금 더 굵게 만들고 약 50g 정도를 추가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약 160g의 물을 사용했고, 물이 거의 빠져나간 시점은 2분 53초 정도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약 3분 정도에서 추출을 마무리했습니다.
추출 후 물을 더해 농도를 조절
추출된 커피는 약 120g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약 135g 정도의 물을 추가해 최종 농도를 조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원두 대비 전체 물 사용량은 대략 1:17에 가까운 비율이 됐습니다.
한 모금 마셔보니 예전에 저울 없이 내렸을 때 느꼈던 인상과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첫맛은 부드럽고, 중간에서는 단맛이 편안하게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남는 맛이 깔끔해서 여러 모금을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물줄기만 바꿔도 느낌이 달라진다
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은 초반 물줄기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산미와 향을 강하게 끌어내고 싶다면 초반부터 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공급하는 방식도 재미있습니다.
반대로 제가 이번에 원했던 것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 후미까지 깔끔한 커피를 만들고 싶다면 초반에는 부드럽게 시작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물줄기를 조금씩 키우는 방식이 잘 맞았습니다.
게이샤라고 해서 항상 화려하고 강한 향만 강조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커피처럼 워시드 게이샤를 부드럽게 추출하면 자극적인 인상보다는 은은한 향과 깔끔한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연히 맛있었던 한 잔을 다시 숫자로 재현해보니, 감으로 내렸던 과정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